우리나라 최대 명절 설의 유래와 설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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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우리나라 최대 명절 설의 유래와 설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어요.

by 셔니74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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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다들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 찾아뵙기도 조심스럽네요.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랄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설은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찾아보았는데요.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네요.

▮ 설의 유래

설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는데

 

① 삼간다는 뜻으로서, 새 해의 첫날에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에서 연유했다는 견해와

 

② ‘섦다’의 뜻에서 유래된 뜻으로, 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 가는 처지를 서글퍼하는 뜻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

 

③ ‘설다, 낯설다’의 의미로 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그리하여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견해,

 

④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

 

⑤ 설이라는 말이 17세기 문헌에 ‘나이, 해’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

⑥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설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하였으나,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에 3일씩 공휴일로 삼았으나, 오히려 2중 과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기까지 하여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공휴일이 되었다가 사회적으로 귀향 인파가 늘어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음식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통틀어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각종 전유어, 각종 과정류, 식혜, 수정과, 햇김치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는데 준비는 가세에 따라 가지 수와 양이 다르지만 정성을 다해 만들며 어느 집에서나 만드는 대표 음식은 떡국이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는 말이 설을 쇠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설 전에 어른들께 귀한 음식을 보내는 일,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보내는 먹을 것들도 세찬이라고 하였다.

그때 보내는 음식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표적인 것은 쌀, 술, 담배, 어물(), 고기류, 꿩, 달걀, 곶감, 김 등이었다.

 설날 아침의 풍속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새 옷을 갈아입는 날은 1년에 3일뿐인데, 설날을 비롯하여 단오와 추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명절날에 입는 옷을 특히 ‘비음’이라고 하는데, 이날 새 옷을 입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생활 단계에 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통과의례의 하나인 것이다.

 

어른들은 설날 아침에 설비음(설빔) 위에 예복을 차려 입고, 사당이나 대청에서 4대 조상의 신주를 내어 모시고 차례로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성묘를 하고 돌아온다.

설 차례에는 떡국을 올리고 차례를 지낸 다음에 음복으로 함께 모여 비로소 떡국을 먹는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나이가 삼재에 드는 사람들은 3마리의 매를 그린 부적을 문설주에 붙인다고 하였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의 어른들께나 친구끼리도 서로 집으로 찾아가서 세배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을 덕담이라고 하는데 덕담의 표현은 시제를 항상 과거형으로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덕담의 형식이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축원으로 변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는 풍속이 전해오며, 세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마련하는 음식을 세찬, 그리고 술을 세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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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놀이

새해에 개인의 신수를 점쳐 보기 위하여 오행점을 보거나 윷점을 치고,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3일이 지나면, 어린아이들이 보름날까지 연날리기를 하다가 14일 날 저녁에 줄을 끊어 날려 버리면 그 해에 드는 액을 날려 버린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액막이연’이라고 불렀다.

 

설을 지내고 3일째 되는 날에 일반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마을고사, 또는 동제라고 하는 공동 제사를 지내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농악을 치고 고사를 지내는 ‘지신밟기’를 하였다. 지신밟기를 할 때에는 집집마다 조금씩 쌀을 내놓는데, 이것은 마을의 공동자산으로 삼는다. 마을제사와 지신밟기는 새해를 맞아 공동의 생활공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한 의미를 갖는다.


떡국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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