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지"하면 떠오르는 건 보통 '불쾌하다', '지저분하다'는 이미지죠.
하지만 이 작은 물질이 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귀지는 단순한 분비물이 아닌, 몸속 이상을 드러내는 '건강지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 귀지란 무엇인가?
귀지는 고막 바깥쪽 외이도의 두 가지 샘, 즉 귀지 샘과 피지 샘의 분비물이 섞인 것이다. 이 물질은 컨베이어 벨트의 동작 원리처럼 피부 세포에 달라붙어 귀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이동 속도는 하루 약 20분의 1㎜이다.
귀지의 주된 기능은 외이도를 깨끗하고 촉촉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세균, 곰팡이, 곤충과 같은 이물질이 뇌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불쾌한 신체 분비물로 외면받던 귀지에 대한 인식이 최근 바뀌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귀지가 놀랍도록 많은 생체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귀지로 알 수 있는 주요 건강 신호 5가지
1. 검거나 끈적한 귀지 ㅡ 중금속 노출 또는 대사 이상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색 귀지는 단순히 오래되어 산화된 것일 수 있지만, 중금속(특히 납, 수은 등)에 장기간 노출된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특히 도시 공해에 자주 노출되거나, 산업체 종사자라면 주의해야 합니다.
2. 묽고 흐르는 귀지 ㅡ 감염 또는 뇌척수액 누출 의심
귀지가 묽고 투명하거나 노란 액체처럼 흐른다면, 단순한 귀지 이상이 아닌 감염(외이도염, 중이염) 또는 두개 내 질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드물지만 뇌압이 높아져 뇌척수액이 누출될 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즉시 진료가 필요합니다.
3. 냄새나는 귀지 ㅡ 만성염증 신호
불쾌한 냄새가 나는 귀지는 만성 외이도염, 혹은 고름이 섞인 감염성 질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균이 자주 증식하는 환경이라면,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고 귀 안쪽이 손상될 수 있어요.
4. 건조하고 부스러지는 귀지 ㅡ 치매와의 연관성?
일본과 미국 일부 연구에서는 귀지가 건조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에게서 알츠하이머 치매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경향을 밝혀냈습니다.
귀지를 만드는 아포크린샘 기능 이상이 자율신경계 변화와 연관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자율신경계 이상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5. 갑자기 귀지가 많아졌다? ㅡ 스트레스, 호르몬 불균형 가능성
평소보다 귀지가 많아지고 색이 진해졌다면, 호르몬 변화 (특히 갑상선 기능 이상)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몸이 반은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몸의 피지선이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귀지 생성량도 늘어날 수 있어요.
▮ 귀지로 '암'도 진단 가능할까?
정확히 말하면, 귀지 자체로 암을 "진단"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는 귀지에서 검출된 특정 단백질, 화학 성분이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환자에게서 특이하게 나타난다는 분석 결과가 있습니다.
아직은 연구 단계지만, 귀지를 활용한 비침습적 진단 도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구결과
1. 젖은 귀지, 유방암과 밀접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니콜라스 L. 페트라키스(Nicholas L Petrakis) 교수는 ‘젖은 귀지’를 가진 미국 백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독일 여성이 ‘마른 귀지’를 가진 일본이나 대만 여성보다 유방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약 4배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0년 도쿄공업 대학교 연구진은 침습적 유관암(가장 흔한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암이 없는 여성보다 젖은 귀지의 특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77%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귀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여부는 물론 제1형 당뇨병인지 제2형 당뇨병인지도 알려줄 수 있다.
혈액 검사가 더 쉽긴 하지만 귀지를 통해 특정 유형의 심장 질환을 진단할 수도 있다.
2. 희귀병 메르니에병의 지표
희귀병인 메니에르병도 귀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현기증과 청력 손실을 유발하는 내이 질환인데, 메니에르병 환자의 귀지에선 건강한 대조군보다 세 가지 지방산 수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발견한 미국 루이지애나주립 대학교 환경화학자 라비 앤 무사(Rabi Ann Musah) 교수는 “특정 질병의 지표로 사용할 수 있는 귀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혈액, 소변, 뇌척수액과 같은 일반적인 생물학적 체액으로는 진단하기 매우 어렵고, (질환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진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질병에 집중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귀지가 이렇게 중요한 건강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핵심은 귀지 분비물이 체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즉 사람의 신진대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3. 귀지, 암 관련 27가지 화합물 내포
연구자들은 귀지에서 암 진단의 ‘지문’ 역할을 하는 27가지 화합물을 발견했다.
“생물의 많은 질병은 대사 질환이다. 당뇨병, 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이 그 예다”라고 브라질 고이아스 연방 대학교 화학과 넬슨 로베르토 안토니오시 필류(Nelson Roberto Antoniosi Filho) 교수가 말했다. “이러한 경우, 지질, 탄수화물, 단백질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건강한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와 다르게 기능하기 시작한다. 미토콘드리아는 다른 화학 물질을 생성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다른 물질 생성을 중단할 수도 있다.”
안토니오시 필류 교수와 동료들은 귀지가 혈액, 소변, 땀, 눈물과 같은 다른 체액보다 이처럼 다양한 물질을 더 많이 농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귀지는 생성 돼 밖으로 배출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적인 변화를 포착하기에 좋은 물질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안토니오시 필류 교수는 귀지 속 27가지 화합물의 분자 농도를 통해 누군가가 암(림프종, 암, 백혈병 중 하나)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2019년 찾아냈다. 하지만 암의 특정 유형을 구별할 수는 없었다. 이는 이 분자들이 모든 종류의 암세포에 의해 생성되거나 이에 대한 반응으로 생성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토니오시 필류 교수는 현재 암세포의 독특한 대사의 일부로 독점적으로 생성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귀지를 활용해 암 전(前) 단계에서 발생하는 대사 장애를 검출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것. 그는 “암은 1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최대 90%에 달하기 때문에 암 전 단계를 진단하면 치료 성공률이 훨씬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안토니오시 필류 교수 연구실은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의 발병으로 인한 대사 변화도 귀지를 활용해 측정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그는 귀지의 화학적 구성 요소를 분석하여 질병 진단에 활용하는 기술인 귀지분석(cerumenogram)을 의료 현장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소량의 귀지로 당뇨병, 암,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질병을 동시에 진단하고 다른 질환으로 인한 대사 변화도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 브라질의 한 병원에선 귀지 분석을 암 진단 기술로 도입했다.
▮ 의학 전문가 조언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귀지는 우리 몸 상태의 '자연 리포트' 같은 존재"라며 "습관적으로 제거하기보단 평소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합니다.
TIP : 귀지는 이렇게 관리하세요
면봉 사용은 피하고 자연스럽게 배출되도록 둔다.
귀 안이 가렵거나 분비물이 많아질 경우 병원 방문.
귀지 색이나 냄새에 급격한 변화가 있다면 전문 진단 권장.
마무리
귀지는 단순한 노폐물이 아닙니다.
귀지가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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